일본 영화 오디션 (빌드업, 끼릭끼릭, 미이케 다카시)

 


솔직히 처음엔 그냥 잔잔한 일본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그날 밤 불도 못 끄고 눈만 말똥말똥 뜬 채 날을 샜습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1999년작 영화 <오디션>은, 알고 보면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아주 냉정하게 해부한 작품입니다. 2023년 국내 개봉 버전으로 다시 화제가 된 이 영화,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빌드업: 방심하게 만드는 게 전략이었다

일반적으로 공포 영화는 초반부터 으스스한 분위기로 관객을 잡아당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정확히 그 반대였습니다. 초반 1시간 이상이 드라마틱한 긴장감 없이 그냥 흘러갑니다. 중년 남성 아오야마가 친구와 밥 먹으며 재혼 이야기를 나누고, 오디션 자리에서 지원자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장면들이죠. 솔직히 중간에 두 번은 정지 버튼에 손이 갔습니다.

영화 기법 용어로 이 구간을 서사적 빌드업(Narrative Build-up)이라고 합니다. 빌드업이란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긴장감을 천천히 쌓아 올리는 서술 구조를 뜻합니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에서는 음산한 BGM이나 갑작스러운 점프 스케어(Jump Scare, 갑작스러운 시청각 충격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를 활용해 빌드업을 채웁니다. 그런데 미이케 다카시는 아예 멜로물처럼 꾸며서 관객의 경계심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전략이 효과가 있었냐고요? 저는 제대로 당했습니다.

아오야마가 시이나 에이히가 연기한 야마자키 아사미에게 첫눈에 반하는 장면도 실제로 보면 꽤 설레게 연출됩니다. 청순한 외모, 조용한 말투, 발레를 했다는 과거. 그 어떤 수상한 징후도 없이 그녀는 완벽한 여자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제가 아오야마의 입장이었다면 저도 속았을 것 같았으니까요.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이미 관객에게 도덕적 공범 의식을 심어두는 셈입니다.

참고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오디션> 외에도 <이치 더 킬러>, <13> 등 극단적 연출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출처: IMDb - Takashi Miike에 따르면 그는 데뷔 이후 30년간 10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한 다작 감독으로, 특히 장르의 경계를 흐리는 연출 방식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알고 보면, 이 영화의 느릿한 도입부가 의도된 함정이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끼릭끼릭: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이 영화의 관람평을 검색하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끼릭끼릭"입니다. 처음 이 리뷰들을 봤을 때는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묘사였습니다.

후반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아오야마 앞에서 야마자키 아사미가 꺼내 드는 도구. 그리고 발목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는 동작. 그 순간 들려오는 금속성 마찰음이 바로 "끼릭끼릭"입니다. 영화 음향 기법 용어로는 다이에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라고 합니다. 다이에제틱 사운드란 영화 속 공간 안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소리, 즉 배경 음악이 아니라 장면 내 물체에서 나오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이 기법을 극단적으로 사용해서 관객이 고통을 간접 체험하게 만든 것이죠.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단순한 혐오감이 아니었습니다. 기묘하게도 야마자키 아사미의 표정은 그 내내 차갑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광기를 눈을 치켜뜨며 표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일을 처리하듯 행동합니다. 시이나 에이히의 이 연기는 단연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일반적으로 공포 영화의 빌런은 과장된 표정으로 공포를 전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반대의 방식, 즉 무표정한 절제가 훨씬 더 깊은 공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마지막 10분의 임팩트를 두고 영화 전문 매체들도 "20세기 공포 영화 역사에서 손꼽히는 피날레"라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Rotten Tomatoes - Audition(1999)에서도 신선도 지수 82%를 기록하며 비평가들의 꾸준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단순 B급 고어물이 아닌, 예술적으로도 인정받은 작품임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 고어 연출이 순전한 예술적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이 조금 나뉩니다. 공포의 메시지 전달을 위한 연출과,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잔혹극 사이 어딘가에 이 영화가 있다고 봅니다. 두 요소가 공존하기 때문에, 어떤 관객에게는 걸작으로, 또 어떤 관객에게는 그냥 불쾌한 영화로 남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미이케 다카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는 반응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오야마가 좀 불쌍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 봤을 때 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디션 지원자들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참가한 자리가 사실은 한 남자의 배우자 품평회였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가진 진짜 불쾌함의 출발점입니다.

아오야마가 오디션이라는 형식(포맷)을 빌려 여자를 선발한 행위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명백한 기만입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관계의 조건을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것, 이 구조는 2025년 현재에도 다양한 형태로 반복됩니다.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시작되는 수상한 접근, 조건만남 앱, 겉으로는 친목 모임처럼 포장된 이성 만남 자리까지. 미이케 다카시는 1999년에 이미 이 문제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스크린에 올렸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관계는 반드시 균열이 생긴다. 아오야마의 오디션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2. 상대방의 상처와 트라우마(Trauma, 과거의 충격적 경험이 현재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무시한 채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 했을 때 그 결과는 파멸로 돌아온다.
  3. 야마자키 아사미의 광기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닙니다. 그녀가 겪어온 과거의 폭력과 착취가 그 근원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4. 카타르시스(Catharsis, 예술 감상을 통해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복수가 통쾌하지 않고, 고통이 고통으로만 남는 구조입니다.

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요시카와가 "그 여자 더 이상 찾지 마"라고 경고할 때, 관객은 이미 그 말이 맞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도 아오야마는 멈추지 않습니다. 이 어리석음이 단순히 한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도 찝찝함이 오래 남습니다. 제가 그날 밤 불을 못 켠 건 무서워서이기도 했지만, 그 찝찝한 여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25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끔찍한 장면 때문만은 아닙니다. 느린 빌드업 끝에 터지는 그 10분의 한 방은 분명히 강렬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그 이면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성격이 급한 분이라면 초반 진행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답답함을 견뎌낼 자신이 있다면, 그리고 자극적인 공포 너머 인간 욕망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한 번쯤 마주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단, 밤에 혼자 보는 건 비추합니다. 경험담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조언입니다.

--- 참고: https://m.blog.naver.com/hinesisy/22430370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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