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만 관객 동원했는데 왜 실망했다는 반응이 많을까 — 반도 흥행과 평가 괴리 분석

 


솔직히 말하면 극장에서 <반도>를 보던 날, 저는 첫 장면부터 <부산행>을 자꾸 머릿속에 꺼내 들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텅 빈 극장 좌석 사이에서 혼자 팝콘을 먹으며 "이번엔 어떤 공포를 보여주려나" 기대했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좀비 영화가 아니었구나"였습니다. 그 복잡한 감정을 오늘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팬데믹 속 흥행성적, 숫자가 말해주는 것

2020년 여름, 극장가는 말 그대로 얼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객 수가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던 시기에 <반도>는 개봉 첫날에만 35만 명을 동원하며 당시 개봉일 최고 기록을 세웠고, 4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최종 국내 누적 관객 수는 약 381만 명으로 그해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습니다.

전 세계 수익은 약 4,270만 달러입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333만 달러를 기록하며 <기생충>을 제치고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 자리를 차지했고, 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에서 오프닝 성적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총 제작비 190억 원 기준 국내 손익분기점(BEP, Break-Even Point)은 약 250만~524만 명 수준이었는데, 쉽게 말해 그 기준을 통과하려면 국내외 수익을 합산해야 했고, 실제로 해외 흥행이 그 역할을 단단히 해줬습니다.

다만 저는 이 숫자 앞에서 한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381만 명이라는 수치는 분명 대단한 성과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가 "영화 자체가 좋았다"는 증거냐고 물으면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당시 제대로 된 대작 경쟁작이 없던 시장 상황과, <부산행>이 쌓아놓은 팬덤 효과가 상당 부분 작용했을 거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해 박스오피스 데이터를 보면, 경쟁작 부재 속에서 <반도>가 독주했던 흔적이 뚜렷합니다.

액션연출의 완성도, 카체이싱이 전부였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짜 심장이 뛰었던 장면은 단연 폐허가 된 도심을 가로지르는 카체이싱(car chasing) 시퀀스였습니다. 카체이싱이란 차량 추격 장면을 중심으로 구성된 액션 시퀀스를 말하는데, <반도>에서는 여기에 좀비 군중을 장애물이자 무기로 활용하는 독특한 설계가 더해져 있었습니다. 준이와 유진이 차를 몰며 좀비 무리를 유인하고 흩뜨리는 장면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게임 화면을 보는 듯한 속도감과 화면 설계가 인상적이었고, 이 부분만큼은 전작 <부산행>이 보여주지 못한 영역을 개척했다고 봅니다.

연출 기법으로 보면 이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문명 붕괴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장르적 관습을 뜻합니다. <매드맥스> 시리즈가 대표적 레퍼런스인데, <반도>는 그 스타일에 한국식 정서를 얹으려 했습니다. 그 시도가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아쉬웠던 건 CGI(Computer-Generated Imagery,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성된 시각 효과) 처리의 완성도였습니다. 야간 추격 장면에서 일부 좀비 군중 묘사가 실사와 어색하게 분리되어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몰입이 툭 끊겼습니다. 제작비 190억 원이라는 규모를 생각하면 기대치가 높았던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보니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아래는 <반도>의 액션 장면이 잘 작동한 요소와 그렇지 못한 요소를 정리한 것입니다.

  1. 잘 작동한 요소: 좀비를 도구로 활용하는 카체이싱 설계, 빠른 편집 템포, 이레·문우진 등 신예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차량 액션 연기
  2. 아쉬웠던 요소: 야간 장면 CGI 완성도, 클라이맥스 격투 장면의 과장된 연출, 현실감이 희박한 일부 장애물 설정
  3. 중간 지점: 구교환이 연기한 황중사의 빌런 퍼포먼스는 액션과 연기 사이에서 묘한 균형감을 만들었지만, 과장과 몰입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음

캐릭터서사의 구조적 한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만, 많은 분들이 <반도>를 단순히 "좀비가 약한 영화"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문제의 핵심은 좀비 분량이 아니라 캐릭터 서사의 밀도에 있다고 봅니다. 캐릭터 서사(Character Narrative)란 인물이 사건을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방식을 뜻합니다. <반도>는 이 구조를 분명히 의도했습니다. 정석이 "쉽게 포기하는 인간"에서 "끝까지 달려가는 인간"으로 바뀌는 아크(arc)가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변화를 뒷받침하는 감정 누적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철민의 죽음, 민정 가족과의 유대, 누나를 잃은 죄책감. 이 요소들이 충분히 쌓였다면 클라이맥스의 신파(melodrama)적 장면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왔을 텐데, 실제 관람 중에는 그 감정이 충분히 준비되기도 전에 장면이 먼저 도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신파란 과도한 감정 호소를 통해 슬픔이나 감동을 유발하려는 연출 방식을 말하는데, 복선 없이 신파만 남으면 오히려 반감을 일으킵니다.

반면 구교환이 연기한 황중사와 이레가 연기한 준이는 달랐습니다. 황중사는 대사 몇 마디와 표정만으로 인물의 광기와 논리를 동시에 설득시켰고, 준이는 폐허 속에서 자란 세대의 담담함을 무리 없이 소화했습니다. 특히 엔딩 직전 준이의 마지막 대사 "제가 있던 세상도 나쁘지 않았어요"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울림이 컸습니다. 그 한 마디가 살아남은 자들의 복잡한 감정을 압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교환은 이 작품으로 제20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올해의 새로운 남자배우상(영화부문)을 수상했는데,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결과였습니다.

캐릭터 서사의 빈틈을 인물의 배경과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탓으로 볼 수 있는데,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가 분석한 2020년 한국 상업영화 트렌드 보고서에서도 "감정선 설계보다 스펙터클 중심의 구성이 관객 기대와 충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점이 언급된 바 있습니다. <반도>는 그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부산행 후속작으로서의 포지셔닝, 득인가 실인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딜레마는 처음부터 "부산행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직접적인 인물 연결은 없는 스핀오프(spin-off) 성격의 작품인데, 스핀오프란 기존 작품의 세계관을 공유하되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로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형태를 말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자유롭게 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구조지만, 현실에서 관객은 <부산행>의 긴장감과 감정적 밀도를 무의식적으로 비교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제가 직접 두 편을 연속으로 본 적이 있는데, <부산행>이 밀폐된 공간(기차)에서 오는 공포와 인간관계의 압박을 극대화했다면, <반도>는 넓은 오픈 월드에서 다양한 갈등을 펼쳐놓으려 했습니다. 문제는 넓어질수록 공포는 희석된다는 점입니다. 좀비 장르에서 공간 밀도와 긴장감은 거의 정비례합니다. <부산행>의 좁은 통로가 주던 압박감을 <반도>의 폐허 도시는 대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패작이냐 하면, 저는 그렇게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독립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액션 영화로 접근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에서 보여주지 못한 스케일과 장르 실험을 시도한 점은 분명히 평가할 만합니다. 다만 그 시도가 기존 팬들의 기대치와 충돌했고, 그 간극이 관람 후 평점(왓챠피디아 2.9점, IMDb 5.5점)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봅니다.

결국 <반도>는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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